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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연구 결과물 > 연변 조선족 전통음식 > 보고서 > 이주와 음식문화
7. 맺음말

7. 맺음말
연변조사에서 만난 60세 이상 되는 조선족 대부분이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한국에 들어갔다 온 경험이 있었다. 이들 눈에 한국에서 납득되지 않았던 것이 ‘영어로 된 간판과 표기문’ 등이라고 한다. 현재 연변 거리에서 사용하는 간판과 안내문은 한글이 중심이고, 이어서 한어(漢語)로 병기하는 형태다. 물론 한어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 된다고도 한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조선족 사람들의 전통에 대한 인식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족은 중국 이주 초기부터 지금도 ‘밥, 국, 김치’를 일상음식으로 하는 음식문화를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마을에서는 한글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마을도 있지만, 그러한 마을에서도 일상음식으로서 ‘밥, 국, 김치’는 변화하지 않았다.
이번에 실시한 조선족 한식 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 거주하는 거주민 70여명을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연변대학교 교수 3인과 연변조선족전통요리협회(회장 김순옥)의 도움으로 ‘한식요리아카데미’가 열려 구술자와 면담을 맡은 연구자들이 참여한 것이다. 참여한 연구자 모두 보다 깊은 연구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했다. 지속적으로 변해가고 소실되어 가는 조선족 음식을 직접 확인하면서 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연변대 교수들과 연변조선족전통요리협회 회원들은 당사자가 조선족이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이를 위해 면접조사지를 먼저 만들었으며, 기억력 회복을 위해 2∼3명 그룹인터뷰로 진행하였다. 면접조사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었다. 기본면접 조사지는 제보자의 기본 인적사항과 이주 정보, 유형별 음식, 전수 과정, 가족사, 조선족 식문화 전수과정과 노력, 상차림 및 식사 공간 정보 등으로 구성하였으며, 심층면접 조사지는 특정 음식에 대한 음식명칭, 별칭, 종류, 특징(즐겨먹는 시기, 유래, 특징, 음식에 담긴 일화), 전통음식 재료 정보(재료명, 재료 확보, 재료 분량, 재료 준비, 조리 과정, 기타 등으로 구성하였다. 면접 진행 순서는 조사 취지를 먼저 언급하고, 제보자들의 인적사항과 친정 및 시어머니가 해 주었던 음식, 제보자 본인이 즐겨하는 음식 등에 대한 기억을 되찾는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인터뷰 도중 조선족 음식들의 대한 기억이 있으면, 해당 음식을 가지고 심층조사를 하였다. 물론 한 그룹 면담에 배정된 시간이 두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기에 충분한 조사가 진행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조사하려 노력하였다. 인터뷰 전 과정을 음원으로 남겨두었으며, 일부 조사과정은 동영상으로도 남겼다.
대부분의 제보자들이 이주 2세대나 3세대에 해당하며, 대부분 1940년대 출생한 분들이 많았다. 남한에서 이주한 분들도 있지만, 함경도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제보해 준 음식들은 대부분 제보자들에게 친정어머니가 해주었던 음식들이다.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 가운데는 직접 음식 장사를 하던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일찍부터 직장 때문에 독립해서 생활하였고, 중국 내부에서 적게는 2∼3회 많게는 7∼8회씩 이사를 다녀야 하는 형편이기에 친정어머니의 음식을 기억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또한, 결혼 이후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보다는 직장 등의 이유로 독립해서 사는 경우가 많아서 시어머니의 음식을 전수하는 데도 많은 무리가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제보자들이 연길 시내에 혼자 거주하거나 단지 부부만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조선족 음식 전승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대부분 간편하게 식사하고 집에서 만들기보다는 사서 먹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제보자들이 이미 한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고, 길게는 몇 년 동안씩 체류하였기 때문에 한국음식의 영향도 많이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맛내기’ 등의 가공조미료를 대부분의 음식에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기존에 조사한 보고서들을 최대한 활용하였으며, 조사과정에서의 습득한 내용도 일부 첨부하여 작성한 것이다. 조선족의 음식이 이주와 정착 과정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변모해 가고 있는 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려 하였다. 그러나 기존 조사된 보고서가 거의 없기에 많은 부족함이 있다. 특히 의례음식의 경우는 조사된 내용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조선족은 설에 떡국과 물만두를 해서 먹는다. 미리 만두를 빚어두었다가 폭죽을 터뜨리고 삶아먹는 집들도 많아졌다. 보름에는 오곡밥을 하기도 하고 원소병을 삶아먹기도 한다. 추석에는 송편과 월병을 함께 먹는다. 반찬류의 경우, 원래는 데치고, 무치고, 지지고, 찌는 것을 위주로 기름기 적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튀기고, 볶으며, 기름도 예전보다 많이 사용한다. 개장국을 끓일 때도 ‘향채’를 넣기도 한다. 곧 조선족음식은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소실, 변화, 형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해변지역에서 내륙지역으로, 산에서 평지로, 비교적 따뜻한 지역에서 추운 지역으로 이주는 그들의 음식재료의 변화와 더불어 음식조리법의 변화를 낳게 했다.
조선족 음식문화에 있어서 정치, 경제, 문화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다. 특히 예전 중국의 ‘계획적 경제정책’과 ‘식량공급제’는 농산물 품종까지 규정하고, 그에 따라서 식량을 공급했기에 식생활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획일적이게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족들의 음식문화를 많이 수용하였다. 한족들과의 공동생활과 교류로 밀가루음식과 다양한 요리들이 들어왔고, 한족 음식을 보편적으로 먹는다. 거기서 더 나아가 한족의 조리법으로 조선족의 입맛에 맞는 ‘조선족식 중국요리’을 만들어가고 있다. 반면에 한족들의 입에 맞는 ‘한족식 조선족음식’도 만들어 가는 실정이다.(1)
  1.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외, 『조선족민속연구』, 연변대학 출판사, 1996, pp.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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