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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연구 결과물 > 연변 조선족 전통음식 > 보고서 > 이주와 음식문화
1. 머리말

임영상 · 최명환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
1. 머리말
중국 조선족(朝鮮族)은 주류민족인 한족(漢族) 외에 중국을 구성하는 55개 소주민족 중의 일원이다. 그러나 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이민 간 민족 집단이기 때문에 민족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현재의 조선족 공동체 구성원들 중에서 17세기 무렵에 이민 간 사람들(하북성 청룡현과 요녕성에 산재해 있는 박씨 후손)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조선족의 이주 역사는 150여년이 된다. 19세기 중엽 이후 농업이민에서,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한 이후의 망명이민,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만주지역으로 강제 이주한 집단이민 등 시대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조선민족의 이주는 1945년 광복 후 한반도로 귀환하느냐 아니면 중국에 계속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기로에 처하게 되었다. 국민당 수복지역에서는 조선인을 ‘한교(韓僑)’라 지칭하며, 그들의 재산을 일본과 만주국(1) 재산의 일부로 취급하고 강제적으로 압수함으로써 많은 조선인들이 할 수 없이 한반도로 돌아가야 했다. 반면,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조선인을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로 민족평등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심지어 토지소유권도 부여했다.(2)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조선족 공동체 형성은 1949년 9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최로부터 195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까지로 볼 수 있다. 1950년 12월 6일자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중국동북경내적조선민족(中國東北境內的朝鮮民族)」이라는 논설에서 “1949년 9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개막되면서 동북경내의 조선인민은 중국경내 소수민족의 자격으로 각 형제 민족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각 민족 인민가운데 이 새로운 구성부분은 각 형제민족 인민들의 관념 가운데서 교민으로 중국에 거류하는 조선인민들로부터 갈라져 나오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중국공산당의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조선민족이 조선교민으로부터 중국 소수민족으로 탈바꿈한 시간을 1949년 9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최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조선인민’, ‘조선민족’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어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1951년에서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는 시기에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3) 따라서 ‘조선족’이라는 개념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이민자 혹은 그들 후손 중에서 중국 행정당국의 승인을 거쳐 ‘조선족’으로 분류된 사람을 일컫는다.(4)
조선족의 이주, 정착 및 생활사는 만주지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으며, 그들의 현재는 이러한 역사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일제강점기, 광복 후의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등 파란만장한 정치적·사회적 변화 속에서 그들은 자기 나름의 민족적 정통성을 고수하는 한편,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오늘날 조선족 문화에는 한(韓)민족 문화와 중국 문화라는 두 가지 근원이 존재한다고 한다. ‘한문화’를 중심으로 이문화권과의 갈등과 동화 속에서 조선족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들 나름의 독특한 민족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음식문화에 국한해서 보면, 이주 초기 조선족은 빈곤계층에 속해 있었고, 하루 세끼도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집단노동을 통해 대량의 수전(水田)을 개발하면서부터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음식문화를 정착시키게 된다.(5) 특히 음식문화의 전승은 사회보다는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전승하는 과정에서 한족 음식문화의 흡수로 변형·정착하는 과정을 겪는다. 또한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계획경제제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이후부터 조선족 ‘음식산업’은 상업화와 전문화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족의 음식문화는 전통음식의 수용과 한족들을 중심으로 한 주변 민족 및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음식문화를 습합한 양상을 보이며, 그 나름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조선족 특히 연길지역 거주자들의 음식문화를 한국과 조선족 사회에서 조사한 보고서들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6) 또한 2014년 9월 20일∼23일까지 있었던 연변 현지조사의 내용들을 참조하였다. 그러나 현지조사에서 조사 대상자들 대부분이 연길 출신이라기보다 인근 지역인 훈춘, 도문, 용정 출신들이 많았으며, 경제적인 부를 축적 후 연길로 이주해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연구 범위를 연길에 국한하지 않고 연변 전역으로 확대해서 언급하려 한다.
  1. 만주국(1932∼1945) :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중국 동북에 세운 국가로 중국에서는 “위(僞)” 글자를 붙여 위만주국으로 칭하고 있다.
  2. 손춘일, 「광복 후 재만조선인들의 잔류와 국적문제」, 『글로벌 코리안 경제 문화 네트워크』, 민족출판사, 2008, 249쪽.
  3. 한국인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진출한 한민족동포(ethnic)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족은 과거 어려운 시절 한반도에서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이민해 왔고 중국의 혁명과 개발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중국국민의 자격을 취득한 일개의 소수민족(nation)이다. 곧, 한국인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조선족은 분명히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의 한 갈래이지만 중국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족은 100여년이 넘는 정착과정을 거쳐 성공적으로 중국에 뿌리를 내렸고 중국에서 주류사회에 진입한 모국의 국적을 초탈했다는 뜻의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이다. ‘조선족’이라는 3글자 속에는 조선(한국)에서 이민해 왔고, 조선(한)민족공동체(ethnic group)에 소속되며,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이라는 내용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황유복, 「중국 조선족의 문화공동체」, 『한반도 제3의 기회』, (사)해외한민족연구소 편, 화산문화사, 2009.)
  4. 정희숙, 「조선족 문화변동과 문화정체성」, 『역사문화연구』35집,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0, 658쪽.
  5. 발해국(698∼926)이 멸망한 후 1,000여 년 간 중국 북방지역인 동북일대에서 벼를 재배한 기재와 흔적이 없다. 조선의 농민들이 이주하여 벼농사에 착수함으로 동북지역 근대 벼농사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권영조, 「조선민족(朝鮮民族)의 이주와 중국 동북일대 근대 벼농사의 개척」, 『재외한인연구(在外韓人硏究)』 제2호, 1992, 130쪽.)
  6. 연구 대상 자료들은 참고문헌으로 대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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